15년의 유랑 길이었다. 국경 너머 분쟁 현장과 빈곤 지역을 두 발로 걸어온 박노해 시인. "사랑하다 죽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사랑 없이 사는 것은 더 두려운 일이지요.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지요." (2011년 아프가니스탄 국경마을에서) 그가 흑백 필름 카메라와 오래된 만년필로 기록해온 '유랑노트'가 출간되었다. 박노해 사진에세이 [다른 길]에 담긴 세계는 넓고도 깊다. 티베트에서 인디아까지, 지도에도 없는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 땅의 이야기가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사진집 이상의 사진집이자 시와 같은 이야기가 빚어낸 지상의 아름다운 책 한 권, [다른 길]은 마치 정성이 가득 담긴 친구의 초대장처럼 저 멀고 높고 깊은 마을과 사람들 속으로 나를 안내한다. 삶이 흔들릴 때마다 아무 곳이나 펼쳐보는 순간, 가만히 내 마음의 깊은 곳에 '별의 지도'가 떠오를 것이다.
지구시대 유랑 시인, 박노해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의 유랑길은.
한 시대의 끝간 데까지 온몸을 던져 살아온 나는,
슬프게도 길을 잃어버렸다."
( '작가의 글' 중에서/ p.6)
그러나 그는 차라리 '길 찾는 혁명가'였다. 박노해는 늘 정해진 길보다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고자 했다. [노동의 새벽]의 시인으로 80년대 권위주의 시절에 민주투사이자 저항의 상징이었던 박노해는, 사형을 구형 받고 무기수가 되어 7년여를 감옥에 갇혀 있었다. 민주화 이후 자유의 몸이 되고 나서는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며 다들 예상했던 권력과 정치의 길을 거부하고 묵묵히 스스로 잊혀지는 길을 택했다. 그는 스스로를 이 체제의 경계 밖으로 추방하여 지난 15년간 '지구시대 유랑자'로 이 지상의 가장 멀고 높고 깊은 마을과 사람들 속을 걸어왔다. 지금도 그는 소리 없이, 세계 곳곳에서 자급자립하는 삶의 공동체인 '나눔농부 마을'을 일으켜 세우며 새로운 사상과 혁명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그런 그에게 언제부터인가 수많은 젊은이들이 길을 물어왔다. '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간절한 물음을. 긴 침묵을 깨고 이제 그가 말을 한다. '다른 길'이 있다고. 말로는 다 전할 수 없는 진실을 담아온 사진, 그리고 그가 목숨 걸고 참구해온 사유가 담긴 사진에세이를 가만히 건넨다.
'희망의 종자'를 품은 땅, 아시아에서 길어올린 시대정신
사진 에세이 [다른 길]에서 박노해는 '아시아'로 초점을 맞춘다.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대륙을 건너 지난 3년간 아시아 전역을 기록한 흑백 필름 사진은 무려 7만여 컷. 3년의 작업이라고 하기엔 믿기지 않을 만큼 방대하고 다양하다. [다른 길]에는 인류 정신의 지붕인 땅 티베트에서부터 예전에는 천국이라 불렸으나 지금은 지옥이라 불리는 파키스탄을 거쳐 극단의 두 얼굴을 지닌 인디아까지, 나아가 버마, 인도네시아, 라오스 등 총 6개국의 엄선된 140여 점의 사진이 실렸다.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를 구원할 주체로 아시아의 시대를 호명하고 있는 지금, 박노해는 깊은 물음을 던진다. "아시아 시대의 부상은, 단순히 경제권력이 이동하는 문제를 넘어 '문명 전환'의 숙제를 우리에게 안겨주는 인류사적 사건이다. 세계 절반이 넘는 거대 인구 공동체가 '성장과 진보'라는 서구의 길을 뒤따라간 자리에 과연 무엇이 남을 것인가?" 그 동안 뒤떨어진 듯 여겨져 온 아시아는, 그에게는 오히려 '좋은 삶의 원형'이자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원할 '희망의 종자'가 남겨진 땅이다. 오랫동안 대안 삶의 혁명을 추구하고 실험해온 그는, 아시아 토박이 마을 삶 속으로 들어가 '최후의 삶'이자 '최초의 인간'인 그이들과 혈육처럼 어울리며 사진을 찍고 그이들의 지혜의 말을 새기며 글을 썼다.
박노해의 사진 속 아시아는 '눈물의 땅' 아시아도 아니며, 신비화된 '오리엔탈'의 아시아도 아닌 전혀 새로운 모습이다. 박노해는 슬픔의 힘으로 상처를 치유하고 강인한 생명력으로 소생하고 있는 아시아인의 삶을 담아냄으로써, 정직한 절망 끝에 길어올린 '희망의 세계관'을 제시한다.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마을에, '다른 삶' 속으로
박노해가 지도에도 없는 마을에 두 발로 찾아가 만난 사람들은 우리의 눈에서 '사라진 사람들'이다. 눈부시게 진보하는 세계와 멀어져 가장 험난한 곳에서, 자신이 무슨 위대한 일을 하는지 인정받으려 하지도 않고 인류를 먹여 살릴 한 뼘의 대지를 늘려가는 전통마을 토박이들. '어찌할 수 없음'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어찌할 수 있음'은 최선을 다해가면서, 우리 삶은 '이만하면 넉넉하다'고 서로 기대어 사는 사람들. 박노해는 이들의 '위대한 일상'의 헌신과 고결을 묵묵히 포착해낸다.
"인간에게는 위대한 일 세 가지가 있다.
사는 것, 사랑하는 것, 죽는 것."
그러나 오늘날의 세계는 어느 도시나 똑같이 '평평해진' 시장 만능의 산업기술 체제와 화폐원리주의 생활방식 속에서 일상의 기쁨도, 노동의 보람도, 인간의 위엄도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박노해의 사진은 지상의 가장 멀고 높고 깊은 마을들에서, 다 다르게 살고 있는 사람들의 강인하고도 아름다운 삶을 펼쳐 보인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노동하고, 사랑하고, 아이를 키우고, 저항하고 기도하고 죽기까지 일생에서 누구나 부딪히게 되지만 가장 어려워하는 삶의 본질 문제에 대해서, 토박이들의 놀라운 삶의 지혜들을 사진과 글로 풀어 놓는다. 박노해의 사진과 글 속에서 그이들은, 똑같은 길로만 질주하며 위기에 빠진 우리에게 '다른 길'이 있음을 가리키는 길라잡이가 되어준다.
인도네시아의 가파른 비탈 밭, 라당을 일구는 여인은 자신의 아이가 농부가 되기를 바란다며 "밭을 밟고 오르며 농사짓는 건 몸이 좀 힘들 뿐이지만 남을 밟고 오르는 괴로움을 안고 살아갈 수는 없지요. 늘 마음의 평화를 누리며 살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다. 이 여인의 말을 통해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물려주고 있는가를 돌아보게 된다. 라오스의 산간 마을 주민들이 강물에 자력으로 세운 마을 수력발전소는 "거대 독점 시스템도 고압송전의 낭비도 없고 블랙아웃과 전기세 걱정도 없는 최고의 적정기술"로 살아갈 수 있음을 새삼스레 보여준다. 박노해의 사진과 글은 그렇게, 어느덧 사라져버린 다른 삶에 대한 상상력을 열어준다.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잃어버린, 그러나 아직 내 안에 살아있는 순수한 얼굴을 비춰 보이며, 나 또한 다르게 살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불어 넣어준다.
사진에세이 [다른 길], 새로운 장르를 창조하다
박노해의 사진과 글이 담지한 시공간은 넓고도 깊다. 세계화의 바람에 휩쓸려온 21세기 세계사가 담겨있고, 오래된 전통의 삶의 양식이 담겨있다. 그가 15여년 동안 전세계를 유랑하며 발로 밟은 영토의 넓이는 '세계 4대 여행기'를 남긴 혜초, 마르코 폴로, 오도릭 그리고 이븐 바투타를 뛰어 넘는다. 그들은 글로만 썼다면, 박노해의 사진에세이 [다른 길]은 인류에게 카메라가 발명된 후 탄생한 새로운 장르의 창조물이다. 현장의 삶을 정통 다큐멘터리 흑백 사진으로 한 장 한 장 심장의 떨림으로 촬영하고, 사진 한 컷 한 컷마다 직접 글을 썼다. 독자의 주체적 감상을 조금도 가로막지 않되, 그 땅의 역사와 문화와 사진 속 인물의 속 깊은 사연을 단 10여 줄에 시처럼 녹여낸 글은 사진의 감동을 증폭시킨다. 이것은 세계 어느 사진 작가도 문필가도 시인도 할 수 없었던, 오직 동양화와 조선 시서화詩書畵 전통을 체화한 코리아의 시인만이 할 수 있는 창조물이다. 그의 사진 한 장, 글 한 편 마다에는 단편소설만큼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시적으로 응축되어 있다. 또한 그의 글에는 깊은 사유와 시대정신이 담긴 경구들이 가득하여, 그의 발바닥 사랑으로 그려진 이 책은 내 손 안에서,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하나의 '화두 그림첩'이 된다. 박노해 사진에세이 [다른 길]은 정보 전달 위주의 여행서나 개인의 감상을 풀어놓은 여행에세이와도 전혀 다른 품격의 새로움을 보여준다.
박노해 사진에세이 [다른 길]은 사진 속 삶만큼이나, 지상의 아름다운 책 한 권이 주는 감동을 선사한다. 갑오년 청마의 해, 새봄의 생기를 담은 듯 산뜻한 그린의 표지는 내 눈과 손과 마음을 푸르게 물들일 것만 같다. 책장을 넘기면 흑백 사진만으로도 이토록 찬연하며, 장이 바뀔 때마다 만나는 뜻밖의 칼라 사진은 눈이 다 시리다. 이렇게 사진의 감동이 책 속에서 온전히 전달될 수 있는 건, 새로운 인쇄방식 때문이다. 유럽의 인쇄를 뛰어넘는 아트프린팅은 여느 사진집에서도 불가능한 인쇄를 단행본에서 구현해냈고, 이 책을 사진집 이상의 사진집으로 완성했다.
이 것은 박노해 시인과 뜻을 같이하며 고독한 장인의 길을 걸어온 두 사람이 있어 가능했다. 이젠 프랑스와 독일에서도 보기 힘든 대형 흑백 아날로그 인화 전문가로, 박노해 시인의 사진작품 인화를 전담해온 유철수(47), 그리고 독일에서부터 17년 동안 사진과 그림 인쇄만을 연구하며 파고든 유화(41)는 이 책의 제작에 온 심혈을 기울였다. 박노해 사진에세이 [다른 길]을 통해 코리아의 독자들은 인쇄술의 선진국인 유럽과 일본에서도 보기 힘든 세계 최고의 아날로그 인화와 인쇄를 만나고, 최초의 사진에세이 장르의 창조물을 맛보는 감동과 '안복安福'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한 걸음 다른 길로, 한 걸음 나에게로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박노해는 말한다. "지금 이대로 괜찮지 않을 때, 지금 이 길이 아니라는 게 분명해질 때, 바로 그때, 다른 길이 나를 찾아온다"고. "진정한 나를 찾아 좋은 삶 쪽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에게는 분명, 다른 길이 있다"고.
"우리 인생에는 각자가 진짜로 원하는 무언가가 있다.
나에게는 분명 나만의 다른 길이 있다."
[다른 길]은 마치 정성이 가득 담긴 친구의 초대장처럼 저 멀고 높고 깊은 마을과 사람들 속으로 나를 안내한다. 그 낯선 세계 속으로 걸어 들어가 마주하는 것은 정작 나 자신이다. 우리 가슴 안의 무언가를 탁, 건드리며 근원적 소망을 불러일으키는 힘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다른 길]은 삶의 여정에서 흔들릴 때마다 문득 떠올라 내 마음 속 '별의 지도'가 되어줄 것이다.
이제, 내 마음의 순례길을 걸어가보자.
한 걸음 다른 길로.
한 걸음 나에게로. 그 길이 나를 찾아왔다
지도에도 없는 마을로 떠나는 여행
티베트에서 인디아까지
'이야기가 있는 사진' 속으로
"우리 인생에는 각자가
진짜로 원하는 무언가가 있다
분명 나만의 '다른 길'이 있다"
내 삶이 흔들릴 때마다
마음 속 '별의 지도'가 되어줄
박노해 시인의 유랑노트
15년의 유랑 길이었다. 국경 너머 분쟁 현장과 빈곤 지역을 두 발로 걸어온 박노해 시인. "사랑하다 죽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사랑 없이 사는 것은 더 두려운 일이지요.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지요." (2011년 아프가니스탄 국경마을에서) 그가 흑백 필름 카메라와 오래된 만년필로 기록해온 '유랑노트'가 출간되었다. 박노해 사진에세이 [다른 길]에 담긴 세계는 넓고도 깊다. 티베트에서 인디아까지, 지도에도 없는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 땅의 이야기가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사진집 이상의 사진집이자 시와 같은 이야기가 빚어낸 지상의 아름다운 책 한 권, [다른 길]은 마치 정성이 가득 담긴 친구의 초대장처럼 저 멀고 높고 깊은 마을과 사람들 속으로 나를 안내한다. 삶이 흔들릴 때마다 아무 곳이나 펼쳐보는 순간, 가만히 내 마음의 깊은 곳에 '별의 지도'가 떠오를 것이다.
지구시대 유랑 시인, 박노해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의 유랑길은.
한 시대의 끝간 데까지 온몸을 던져 살아온 나는,
슬프게도 길을 잃어버렸다."
( '작가의 글' 중에서/ p.6)
그러나 그는 차라리 '길 찾는 혁명가'였다. 박노해는 늘 정해진 길보다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고자 했다. [노동의 새벽]의 시인으로 80년대 권위주의 시절에 민주투사이자 저항의 상징이었던 박노해는, 사형을 구형 받고 무기수가 되어 7년여를 감옥에 갇혀 있었다. 민주화 이후 자유의 몸이 되고 나서는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며 다들 예상했던 권력과 정치의 길을 거부하고 묵묵히 스스로 잊혀지는 길을 택했다. 그는 스스로를 이 체제의 경계 밖으로 추방하여 지난 15년간 '지구시대 유랑자'로 이 지상의 가장 멀고 높고 깊은 마을과 사람들 속을 걸어왔다. 지금도 그는 소리 없이, 세계 곳곳에서 자급자립하는 삶의 공동체인 '나눔농부 마을'을 일으켜 세우며 새로운 사상과 혁명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그런 그에게 언제부터인가 수많은 젊은이들이 길을 물어왔다. '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간절한 물음을. 긴 침묵을 깨고 이제 그가 말을 한다. '다른 길'이 있다고. 말로는 다 전할 수 없는 진실을 담아온 사진, 그리고 그가 목숨 걸고 참구해온 사유가 담긴 사진에세이를 가만히 건넨다.
'희망의 종자'를 품은 땅, 아시아에서 길어올린 시대정신
사진 에세이 [다른 길]에서 박노해는 '아시아'로 초점을 맞춘다.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대륙을 건너 지난 3년간 아시아 전역을 기록한 흑백 필름 사진은 무려 7만여 컷. 3년의 작업이라고 하기엔 믿기지 않을 만큼 방대하고 다양하다. [다른 길]에는 인류 정신의 지붕인 땅 티베트에서부터 예전에는 천국이라 불렸으나 지금은 지옥이라 불리는 파키스탄을 거쳐 극단의 두 얼굴을 지닌 인디아까지, 나아가 버마, 인도네시아, 라오스 등 총 6개국의 엄선된 140여 점의 사진이 실렸다.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를 구원할 주체로 아시아의 시대를 호명하고 있는 지금, 박노해는 깊은 물음을 던진다. "아시아 시대의 부상은, 단순히 경제권력이 이동하는 문제를 넘어 '문명 전환'의 숙제를 우리에게 안겨주는 인류사적 사건이다. 세계 절반이 넘는 거대 인구 공동체가 '성장과 진보'라는 서구의 길을 뒤따라간 자리에 과연 무엇이 남을 것인가?" 그 동안 뒤떨어진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