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 종 하면 장희빈을 떠올리게 된다. 또, 별다른 업적 없이 여인의 치마폭에서 헤어나지 못한 군주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숙종은 그런 군주가 아니었다. 여색에 빠져 무기력하게 세월만 보낸 임금이 아니라 백성과 나라의 안녕을 위해 애쓴 임금이었다. 신권에 눌린 군권을 용납할 수 없었다. 군권을 세우기 위해 붕당을 등에 업은 신료들과 치열하게 정치하고 자신을 닦았다. 이에 따른 부작용도 있었으나, 결국 강력한 왕권을 회복하고 굵직한 업적들을 쌓았다.
가장 어려울 때, 건너가서 안겨야 할 어머니의 품,
숙종에게 강화도는 어머니의 품 같은 섬이었다.
숙 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 바로 강화도다. 숙종은 오랜 세월 강화도에 공을 들였다. 즉위 초부터 ‘강화읍성’을 고쳐 쌓고 덕진진에 행궁을 짓게 하더니 세상을 떠나던 해에는 초루돈대를 완성하였다. 효종처럼 북벌을 밀어붙이지 않았지만 만약을 대비한 보장처를 갖추는 데 힘을 다했다. 진鎭·보堡 체제를 완성하고 수많은 돈대와 외성을 쌓았으며, 그것도 모자라 바다 건너 김포 땅에 문수산성을 쌓았다. 50개가 넘는 돈대 대부분이 숙종 때 세워졌다. 그 덕에 강화도는 더욱 견고해져 병인양요, 신미양요 때 밀려오는 제국주의 서양 세력을 막아낼 수 있었다.
강 화도 태생의 저자는 교사로 근무하며 강화도 역사를 통해 한국사의 깊이를 더하는 연구 활동에 관심이 많았다. 2013년에는 강화역사문화연구소에서 ‘숙종 시대의 강화도’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였으며, 100여 권 이상의 관련 문헌을 수집, 분석하여 집필하는 과정을 거쳐 이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이 책은 강화도를 보장처로 중시한 마지막 군주로서, 조선의 왕 숙종의 면모와 그에 의해 새롭게 태어나는 강화도를 보여 준다. 숙종과 강화도의 밀접한 연관성을 역사적 사실과 구체적인 설명을 통해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고 있다. 숙종이 재위 기간 동안 행한 일을 강화도의 모습과 비교해서 그린 연표는 지하철 노선처럼 선을 따라 읽어가는 재미를 더해준다. 해안 곳곳에 돈대가 숨어 있는 역사의 땅, 강화도에 대한 자부심과 왕권 강화를 위해 치열하게 싸운 숙종의 애잔함이 전해진다.
숙 종의 재위 기간은 45년 10개월로, 14살에 임금이 되어 60세에 생을 마감하였다. 17세기를 마감하고 18세기를 연 군주, 중요한 시기에 왕위에 올라 묵직한 업적을 남기고 돌아간 군주, 강화도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방어 시설 구축에 골몰했던 군주, 그가 바로 숙종이었다.
가 장 힘든 상황이 닥치면 가서 안겨 의지할 어머니의 품, 숙종에게 강화도는 어머니의 품이었다. 다행히 어머니 품에 안겨야 할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종묘사직을 위해, 백성을 위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아마도 숙종이 먼저 강화도를 품은 덕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