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등단 이후 독특한 상상력과 탄탄한 문장으로 폭력적인 현실 속 인간 존재에 대해 치열하게 탐구해온 작가 손홍규의 새 장편소설 [서울] 이 출간되었다. 폐허가 된 서울을 무대로 펼쳐지는 한 소년의 목숨을 건 고투가 시종 읽는 이를 압도하는 가운데, 긴장감 넘치는 문체와 환상적인 분위기, 탄탄한 이야기 구조에 실린 묵직한 문학적 문제의식이 긴 여운을 남긴다. 종말과 인간, 기억과 관계에 대한 집요한 작가적 탐구가 응축된 한편의 아름다운 서사시라 할 만한 작품이다.
차갑고 적대적인 도시 서울, 그 몰락 뒤에 펼쳐진 눈부신 지옥
알 수 없는 이유로 폐허가 되어버린 서울에서 동생과 함께 살아남은 소년이 있다. 소설은 서울을 폐허로 만든 재앙이 어떤 것이었는지, 그 재앙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건물들은 무너졌고, 거리에는 시체들이 즐비하며, 정체 모를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어딘가에서는 비명과 신음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소설은 다만 이 폐허의 풍경과 그 속에 던져진 소년의 행동을, 짤막한 대화와 소년의 황량한 내면을 건조한 문장으로 묘사해갈 뿐이다.
어딘가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소년은 창가로 다가가 조심스레 블라인드 틈에 눈을 갖다댔다. 거리는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산발적인 총성이 울리더니 이윽고 뚝 그쳤다.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꺼내어 쥐었던 나이프의 칼날을 접어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잠에서 깨어난 동생에게 다가간 소년은 손을 뻗어 동생의 이마를 짚었다.
(/ p.9)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다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재앙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대규모의 폭격이 있었으며, 사람이 아닌 무언가로 변해버린 자들이 낮을 차지했고, 살아남은 이들은 낮을 피해 밤에만 모습을 드러낸다는 사실뿐이다. 소설은 그렇게 ‘재난’이나 ‘종말’을 넘어선 ‘종말 이후’의 세계를 우리 눈앞에 불쑥 들이민다. 더구나 그것이 너무도 익숙한 ‘서울’이라는 공간인 까닭에, 그 세계는 한층 더 낯설고 당혹스럽게 다가온다.
익숙했던 이전의 모습은 사라지고 이제 비명과 신음, 위험만이 가득한 서울에서 소년은 살아남아 동생을 지키는 것만을 목표로 길을 나선다. 그리고 그 길에서 자신들을 따르는 한마리의 개와, 남편을 잃은 여자와 그녀의 어린 딸, 그리고 소총으로 무장한 노인과 만나 그들과 일행이 된다. 그들은 사나운 ‘짐승’의 집요한 추격을 받고, 살아남은 인간들의 증오에 찬 습격을 받으며 하루하루 위험하고 힘겨운 여정을 이어간다. 희망이라고는 없는 폐허 속으로 소년이 스스로를 내던지며 겪는 고통은 읽는 이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져올 만큼 지독하기만 하다.
도로가 끊기고 빌딩이 무너지고 도시의 색깔이 단조로워지면서 소년의 내부에서도 무언가가 끊어지거나 붕괴했으며 결국에는 폐허가 된 도시를 닮아 단조로운 잿빛의 감정만이 남게 되었다. 잿더미에서 찾아낸 사리처럼 소중하고도 쓸모없는 감정이었다. 소년은 때로는 폐허가 된 이 서울이 오래전부터 자신의 내면에서 설계되고 건설된 도시가 아닐까 싶었다.
(/ p.21)
그래서일까, 소년의 내면과 폐허가 된 서울은 서로 닮아 있다. 종말이 찾아오기 전에도 소년은 세계에 대해 분노와 증오를 품고 있었다. 이야기의 갈피마다 조금씩 드러나는 종말 이전의 소년의 기억이란 가난 때문에 아파트 옥상에서 자신과 동생을 던지고 자신도 목숨을 버리려 했던 무능한 아버지, 스스로 목을 매어 목숨을 끊은 어머니, 그리고 동생과 함께 서울을 애써 견디던 기억뿐이다. 그렇게 소년의 세계가 증오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종말 이후의 서울에서도 살아남은 이들과 괴물이 된 이들은 모두 증오로 가득 차 있다.
세계가 끝났는데 여전히 인간과 짐승은 의사소통을 할 수 없었다. 서로를 사랑할 수도 없었고 서로를 용납할 수도 없었다. 증오만은 처음처럼 순결했다. 세계가 끝난 뒤에도 증오는 살아남을 것이다. 그건 곧 우주가 증오에서 태어났다는 의미인지도 몰랐다.
(/ p.129)
그러나 이 ‘끝나버린 세계’의 주인은 소년이, 인간이 아니라 괴물들, "한때는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결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그러나 사람과 너무도 흡사하기에 사람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부르기에도 어색한 저 새로운 종족들"(197)이다. 새로 태어나는 생명들도, 그리고 소년의 동생도 그와 같은 존재임을 소설은 알려주고 있다. 그럼에도 소년은 끝까지 동생과 함께하고자 목숨을 내던진다. 동생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다시 죽음을 결심하고 서울의 한복판으로 걸어들어간다.
나는 원래 이렇게 괴물이 될 운명이었던 거야? 넌 괴물이 아니야. 그럼 뭔데? 넌 내 동생이야. 난 형의 동생이 아니라 그냥 괴물일 뿐이야. 괴물...... 그래도 넌 내 동생이야. 형,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아.
(/ p.220)
고요한 멸망을 노래하는 ‘다시없을 단 한편의 시’
무 너진 서울 곳곳의 거리와 소년의 내면 풍경을 교차하며 보여주는 소설은 낯선 만큼 강렬하고, 한편으로 읽는 이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것은 소설이 종말에 대한 익숙한 관념 대신 독특한 은유와 상징으로 이루어진 숱한 예민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기 때문이다. 소설은 묻는다. 종말 이후는 이전과 얼마나 다른 것인가. 종말 이전에도 ‘서울’에 속해 있지 않았던 이에게, 종말 이후의 서울은 무엇일 것인가. 종말 이전과 이후에 ‘우리’는, ‘타자’는 서로 무엇이 되는가. 소년은 매일같이 꿈에서 새로 태어나는 서울을 보고 있었다.
빌딩 앞에 선 그들은 도시를 바라보았다. 소년이 꿈에서 보았던 도시였다. 소년의 마음속에서 폐허로 남아 소년의 꿈에서 날마다 새로 태어나던 도시가 눈을 떴다. 예전의 서울로 이루어졌으나 예전의 서울은 아니면서 또한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서울이었다.
(/ pp.278~79)
작가는 쓴다. "소년이 왜 이 서울과 끝까지 불화할 수밖에 없었는가는 인간의 비밀이다. 소년에게는 기회가 있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소년은 (...) 몰락 뒤에 펼쳐질 눈부신 지옥을 남겨둔 것이다."( [ 작가의 말] 281 면) 그렇게 [서울] 은 세계와 불화하는 인간의 비밀에 대한 이야기이자 인간과 불화하는 세계의 비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니, 그보다 더 많은 비밀을 품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소설이 그려 보이는 ‘서울’이라는 비밀의 공간에서 우리 자신의 비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는 것, 그것이 [서울] 이 우리에게 주는 묵직하고 눈부신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