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행복학 전도사들의 노력 덕분에 미국은 ‘행복 공화국’이 되었지만 그 정체는 좀 아리송하다. 로널드 W. 드워킨은 "현재 미국에서 ‘인공행복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수는 그들 자체만으로도 ‘인공행복 미국인’이라는 새로운 계층을 형성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규모다."라고 말한다. 드워킨은 이 책에서 불행을 치료해야 할 질환으로 간주하는 의사들과 행복이 종교의 사명인 양 행복 전도사 노릇을 하는 종교인들을 비판했다. 그런 식의 맹목적 행복 추구는 삶의 근본적인 진실을 무시하거나 회피하게 만들며, 불행을 낳는 실망과 슬픔과 고통도 우리 삶의 불가피하거니와 필요한 요소들이라는 것이다. 드워킨의 행복론은 더 현실적이다. 1년 365일 내내 화창한 날씨만 계속되면 화창한 날씨가 무어 그리 대단하겠는가. 그와 마찬가지로 실망과 슬픔과 고통도 조금은 곁들여져야 행복의 기쁨도 커지는 게 아닐까?
강준만_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최 근까지 정신작용약물 논란의 대부분은 안전성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로널드 W. 드워킨은 이 탁월한 저작을 통해 프로작이나 웰부트린과 같은 항우울제에 의해 인간의 영혼이 행여 망가지는 것은 아닌지 무거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약통 속의 행복을 찾아 헤매는 현대인의 욕망 앞에서 진실한 삶의 목표와 의미는 이제 큰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_[역사의 종말] 저자
‘인공행복’이 지배하는 디스토피아
현 직 마취과 의사이자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 드워킨은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등장과 함께 세 차례에 걸쳐 미국에서 일어난 의료혁명이 인공행복Artificial Happiness의 확산을 가져왔고, 미국을 행복 강박증 사회로 만들었다고 비판을 가하고 있다.
인공행복이란 정신작용약물(향정신성약물), 대체의학, 강박적 운동(피트니스) 등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행복을 의미한다.
다 가올 미래사회는 이 인공행복이 지배하는 디스토피아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예견하고 있다. 특히 저자는 인공행복이 지배하는 미국 사회를 소마soma를 통해 유지되는 통제사회인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와 비교하면서 인공행복이 지배하는 미국 사회가 ‘멋진 신세계’보다 더 심각한 디스토피아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특히 저자는 인공행복이 성인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까지 널리 확산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인공행복에 지배당하는 ‘행복한 아이들Happy Children’은 자신의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삶의 고통과 불행에 대한 경험을 거세당하게 된다. 이 아이들은 ‘행복한 성인Happy Adult’이 되고 ‘행복한 노인Happy Senior’에 이를 때까지 계속해서 인공행복에 의존한 삶을 살 수밖에 없게 된다.
이 책은 11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에서 저자는 인터뷰와 참여관찰을 통해 얻은 실제 인공행복 미국인의 사례를 나열하면서, 현재 미국에서 인공행복을 경험하는 사람의 수는 ‘인공행복 미국인’이라는 새로운 사회계층을 형성할 만큼 엄청난 규모라고 지적한다.
2~5장에서는 미국 의료혁명의 전개 과정을 서술하면서 어떤 과정을 통해 불행이 기술공학적 의료의 대상이 되어 가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인공행복의 확산을 가져온 미국의 의료혁명은 크게 세 단계에 걸쳐 진행된다.
1차 의료혁명은 1960년대 후반 ‘불행은 질병’이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등장하면서 시작된다. 이 혁명의 결과 이제 불행과 슬픔은 신경전달물질의 문제로 규정되고 기술공학적 의료의 대상이 된다.
2 차 의료혁명은 ‘행복하면 건강해진다’는 대체의학 이데올로기에 기반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 많은 미국인들은 의사가 너무 쉽게 정신작용약물을 처방하는 현실에 대해 염증을 느낀다. 그리고 인간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결여한 채 마치 기계를 다루듯 환자를 치료하는 기술공학적 의료에 대해 크게 반발한다. 이러한 시류에 편승한 일부 일차 진료의들이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대체의학적 치료법을 적용하기 시작하면서 2차 의료혁명은 시작된다. 그러나 대체의학도 마찬가지로 영적인 영역을 다루는 기술공학적 의료가 되어갔다.
3차 의료혁명은 ‘불행감은 운동요법으로 가장 잘 치료될 수 있다’는 운동요법 이데올로기에 기반을 두고 진행된다. 운동요법 이데올로기는 엔도르핀 가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3차 의료혁명의 과정에서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나 ‘세컨드 윈드second wind’라는 용어가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미국 사회에서 강박적 운동과 피트니스 문화에 기반을 둔 인공행복이 널리 확산된다.
6장에서는 미국의 관리의료managed care 체제가 인공행복을 대량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관리의료가 단지 질병뿐만이 아니라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을 포함한 미국인의 생애 전반을 관리하려고 하는 현실을 꼬집고 있다.
7장~9장에 걸쳐 인공행복의 확산 과정에서 발생한 종교계와 의료계의 주도권 싸움을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이 당시 일어난 종교계와 의료계의 갈등을 ‘전투’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묘사하고 있다. 7장에서는 인공행복의 확산이 생명의 시종(始終)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요구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종교계와 의료계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생명의 시종을 새로이 정의하는 전투에서 종교계는 참담한 패배를 하게 된다. 8장은 ‘존 에클스 경의 수난’이라는 흥미로운 부제를 달고 시작된다. 이 장에서는 옥스퍼드 대학의 로즈 장학생 출신이자 노벨 의학상을 수상한 존 에클스 경이 종교계를 대표하여 사그라져가는 이원론을 되살리기 위한 의료계와의 전투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다루고 있다. 9장은 종교계가 더 이상 진화론을 거스를 수 없게 되면서 타협의 방안으로 유신론적 진화론을 내놓게 되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종교계는 이 유신론적 진화론을 통해 과학과 종교의 평화적 공존을 내심 기대하지만, 결과는 종교계가 다시 한번 참담한 패배를 당하는 것이었다.
10장에서는 인공행복을 누리는 ‘행복한 미국인’이 기존의 전통적 생애주기를 파괴하고 그들만의 새로운 ‘인공행복 라이프 사이클’을 만들어 가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 장에서 저자는 십대 우울증에 대한 약물치료가 확산되면서 인공행복을 아이들에게 대규모로 끌어들이고 있는 미국 사회의 현실에 대해 예리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아동기부터 슬픈 감정을 없애도록 인공행복을 주입받으면 성인기와 노인기가 되어서도 삶에 어려움이 닥치면 다시 인공행복을 수혈하는 과정을 반복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마 지막 장, 결론에서 저자는 인공행복의 근본적인 문제는 삶과 행복의 무관계성이라고 지적하면서, 인공행복의 굴레에서 벗어나 진정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동네 헌 책방에 가서 세계의 위대한 신념과 철학에 대한 책을 몇 권 사서 읽어보기만 해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